[나쁜 손] 요가 학원 원장의 말 못할 고민 3  


[나쁜 손] 요가 학원 원장의 말 못할 고민 3              이미지 #1
영화 <방가? 방가!>

 
* 이 이야기는 성심리상당소를 운영하는 여성 치료사의 관점에서 서술한 [소설]입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내담자의 이야기는 허구일수도 사실일수도 있습니다.

“여기가... 박수호 아저씨 다니는 상담소인가요?”

상담소에 한눈에 보기에도 깡마른 동남아 여성이 아이를 업고 나타났다.

“아! 박수호 씨 아내분이시죠? 안녕하세요. 저는 문지영 소장입니다. 아기 데리고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아, 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찌푸라고 해요.”

검은 피부라 더 대조되는 유달리 하얀 이를 드러내며 찌푸 씨가 활짝 웃었다. 어린 나이 같았지만 그녀의 미소에는 고단한 삶을 증명하듯 주름이 자글자글했고 그동안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는지 느껴졌다. 이런 건 상담사의 직감으로 대번에 알 수 있다.

“우리 아저씨가 여기 나보고 오라고 해서요.”

한국에 온 지 3년이 채 안 되었기에 더듬거리는 어색한 발음의 한국어를 들으니 그녀에게 연민이 물밀 듯이 느껴졌다. 타지에서 적응하느라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하지만 이런 감정은 얼른 지워버려야 객관적인 시각에서 상담에 응할 수 있기에 나는 이내 연민이라는 감정을 얼른 지워버리고 상담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녀와 수호 씨의 합작품인 딸 지연이는 등에 업혀 마침 곤히 자고 있었다. 속눈썹이 길고 참 예쁜 아기였다.

“아기가 잘 자네요. 참 순해보여요.”

“네, 아주 착해요. 지금은 자는 시간이에요."

아기를 간이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힌 뒤 찌푸 씨를 내 대각선 옆으로 앉게 했다.

“남편분이 여기 오라고 하면서 뭐라고 말씀하시던가요?”

“아... 그냥 가보라고. 제가 힘든 것 같다고... 가면 예쁜 선생님 있는데 그 선생님한테 하고 싶은 말 다하라고 했어요.”

“네, 맞아요. 마음 편하게 갖고 지금부터 하고 싶은 얘기 저한테 다 하시면 돼요. 저는 꼭 비밀 지켜 드리니까요. 남편분께도 절대 말하지 않아요. 그러니 안심하고 얘기해봐요. 한국에서 뭐가 제일 힘들고 어렵고 요즘 남편하고 시댁과의 사이는 어떤지 뭐 그런 거요. 여기 와서 친구도 만나기 힘들었을 텐데 그동안 외로웠잖아요. 제 말이 맞나요?”

찌푸 씨는 고개를 푹 떨구더니 이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날 바라보며 드디어 입을 떼기 시작했다.

“나 우리 아저씨 미워. 나 얘기 다 들었어. 다른 아줌마들한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우리 아저씨가 학원 여자들 히프, 젖 만진다고 다 들었어요.”

“그랬군요. 그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을 통해 들었을 때 찌푸 많이 속상했겠어요.”

찌푸 씨는 이내 엉엉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나는 우는 그녀를 내 가슴에 머리를 묻게 하고 등을 토닥토닥 하며 달래주있었다.

“많이 힘들었죠. 엄마 아빠도 보고 싶고. 그쵸?”

“선생님, 나 아저씨 하나 믿고 여기 온 건데... 나 일하면서도 우리 아저씨가 다른 여자 만지는 거 봤어요. 내 눈으로 봐서 알고 있는데 딴 사람들도 아니까 아저씨가 너무 미워요. 근데 나한테 미안하단 말도 안 해서 더 미워."

“그랬군요. 찌푸 씨 마음 알겠어요. 마음이 많이 속상했을 거예요. 더군다나 미안하다는 말도 못 듣고. 찌푸 씨가 직접 본 거는 남편한테 얘기했어요?”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눈물을 훔쳤다.

“아니, 근데 나 아저씨 사랑해요. 지연이도 사랑하고. 시엄마도 좋아요. 그리고 여기 한국 생활 이제 괜찮아요. 이제 좋아져요. 근데 아저씨가 자꾸 딴 여자 만지는 건 싫어요. 슬퍼요.”

“알겠어요. 아저씨가 이제 다른 여자 안 만졌으면 좋겠고 찌푸 씨한테 사과했으면 좋겠다는 거죠? 그러면 찌푸도 다른 생각 안 하고 지금처럼만 한국에서 열심히 살 수 있겠어요?”

“네... 저는 한국이 좋아요..."

그녀는 울음을 그치고 물기 띤 눈으로 내 눈을 지긋이 응시했다. 순간 나는 읽을 수 있있었다. 찌푸 씨는 절대 수호 씨를 내팽개치고 베트남으로 혼자 돌아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수호 씨가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뉘우치고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면 지금처럼 열심히 아이를 키우며 한국 생활을 하고 싶다는 감정을 정말 간절히도 나에게 호소하고 있있었다.

그녀가 먼저 이 사실을 거론하지 않았다면 그녀의 내면을 꺼내기가 힘들었을 수도 있다. 외국인인데다 한국 생활이 얼마 되지 않아서 내재된 불신감이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게 했을 수도 있다.그래서 오히려 그녀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상담사의 할 일은 하나. 다음에 수호 씨, 찌푸 씨를 커플로 상담하며 치료하는 것이다. 그 전에 수호 씨와 상의를 해야 한다. 찌푸 씨는 수호 씨의 다음 방문 예약일을 대신 잡고 집에 돌아갔다. 아이를 업고 돌아서는 찌푸 씨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 보였다. 속으로 얼마나 끙끙 앓았을까. 알면서도 내색 못하고 따지지도 울지도 못하는 그 심정... 나에게 오늘 얘기하면서 그동안 가슴 깊이 내재돼 있던 설움을 어느 정도 꺼내놓고 해소했기 때문에 그렇게 표정이 밝아졌으라라.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일단 느끼고 나면 누구나 맘이 편안해진다. 그래서 우울하고 힘들 땐 누구한테라도 털어놔야 하는 것이다. 혼자 차곡차곡 쌓아놨다가는 나중에는 엄청난 위력을 가진 화로 폭발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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